조선광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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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광문회란

일제가 조선을 침탈한 국치(國恥) 바로 두 달 뒤 육당 최남선,백암 박은식,백당 현채 선생이 중심이 되어 우리 고전의 보존 및 반포, 조선 문화의 선양 및 사회계몽 등을 통하여 민족전통을 계승하고 광복을 앞당기고자 1910년 10월에 설립한 단체입니다.

경성 남부 상리동 제34통 4호 (현재 : 서울특별시 중구 삼각동 22-1 청계천 한빛광장) 신문관 건물 2층에 둥지를 튼 광문회는 민족지사들의 집결지이자
민족운동의 중심지로, 당대의 석학,계몽운동가,언론인,예술가 등이 두루 활동한 모임이자 장소입니다.

민족주의자부터 사회주의자, 국학자부터 궁중화가까지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당시의 인명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문화를 창달하였는데, 대표적인 인사들만 살펴보아도 다음과 같습니다.

최남선 박은식 유 근 김교헌 이인승 남기원 주시경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 임 규 김여제 한 징 장지연 현 채 고의동 권상노 김도태
김두종 김성수 김흥제 김윤경 김은호 남궁억 문일평 민태원 박한영
박관식 송진우 심우섭 안재홍 안종원 안중식 양건식 양기택 염상섭
오세창 배광열 윤치호 이갑성 이광수 이능화 이상협 이승훈 이한복
임 규 장지연 정노식 조석진 진학문 최두선 한용운 현상윤 홍난파

기미독립선언서 기초 및 조판

1918년 말 국내외에 민족자결운동 분위기가 움트자 최남선 최린 송진우 선생 같은 당대 인사들이 거국적인 독립운동을 구상하고, 이듬해 3월 1일 직전, 기미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조판한 곳도 바로 광문회 사무실이었습니다.

광문회 주요 인사들은 3·1운동 준비 과정에 천도교 측과 예수교 측을 연결시키는 등 3·1운동의 분위기를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태동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음. 건물이 복원되면 최학주 박사(육당 최남선 선생 손자)가 소장하고 있는 선언서 원본을 전시할 계획입니다.

고전문학의 복원 및 계승

광문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역사서, <택리지> <산수경> 같은 지리서 <훈민정음언해> <훈몽자회> 같은 어문서, <용비어천가> <열하일기> 같은 고전문학, <율곡전서> <이충무공전서> 같은 전집류 등을 간행하여 찬란한 민족문화를 지키고, 이를 후세에 계승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출판은 하지 못 하였으나, 후대의 한글 사전 편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조선어자전>을 편찬하였고, <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청춘> 같은 계몽 잡지를 발행하여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문명과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