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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언론보도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9-11-25 14:15:39
  • 조회수 74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2019-02-23 09:46:35


【서울=뉴시스】(사)3.1정신 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이사장 송상현)가 주최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22일 서울 중구 미래에셋 센터원빌딩(광문회 옛터)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기미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학계의 전문가들과 나라의 발전을 염원하는 회원들이 함께 3.1운동의 국내 의미를 짚어보고 조선광문회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학술대회이다.

조선광문회는 우국지사들의 요람이자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던 조선광문회 건물을 복원하고 선열들의 유지를 현대적으로 확대재생산 하고자 2015년에 설립된 비영리공익법인이다. 2019,02,23 (사진=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기념사하는 송상현 이사장

 2019-02-23 09:46:35

【서울=뉴시스】(사)3.1정신 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는 22일 서울 중구 미래에셋 센터원빌딩(광문회 옛터) 대회의실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고 송상현 이사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기미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학계의 전문가들과 나라의 발전을 염원하는 회원들이 함께 3.1운동의 국내 의미를 짚어보고 조선광문회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학술대회이다.

 조선광문회는 우국지사들의 요람이자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던 조선광문회 건물을 복원하고 선열들의 유지를 현대적으로 확대재생산 하고자 2015년에 설립된 비영리공익법인이다. 2019,02,23 (사진=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3·1운동, 지나온 100년 다가올 100년>“3·1운동은 세계史 드문 사례… 민족의 저력 강조해 기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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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3·1정신 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 이사장 

“조선광문회는 新문화 요람이자  
우국충정 논하는 독립운동 산실  
철거된 지 50년… 복원 꿈 요원”
 

“3·1운동 같은 민족의 국권 회복 운동은 세계 역사상으로 봐도 드문 사례입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 의사를 결집해 세계만방에 알린 우리 민족의 저력에 강조점을 두고 100주년을 기념해야 합니다.” 

송상현(78·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사진) 3·1정신 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 이사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운동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방법에 대해 25일 이같이 말했다. 3·1정신 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는 일제강점기 고전 번역·연구 사업을 벌이던 조선광문회의 건물 복원을 추진하고 관련 사업을 하는 단체다. 이 단체는 지난 22일 조선광문회 터인 서울 중구 수하동 미래에셋 센터원빌딩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기미독립선언서와 조선광문회’를 개최했다.

송 이사장은 조선광문회에 대해 “1890년생인 육당 최남선이 1910년 스물한 살의 나이에 2층 건물로 조선광문회를 지었다”며 “그게 신문화운동의 물결을 타고 문화의 요람이 됐으며, 우국지사들이 독립 방략과 우국충정을 논하는 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1918년 말 국내외에서 민족자결운동이 태동하자 손병희·송진우·한용운·오세창 선생 등 저명인사들은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구상하며 광문회 사무실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조판했다. 송진우 선생의 손자이기도 한 송 이사장은 “할아버지를 비롯한 당시의 선각자들은 조선광문회 건물을 사랑방 삼아 드나들었다”고 소개했다. 

지난 1969년 도로 확장 때문에 건물이 철거된 뒤 50년이 흘렀고, 조선광문회 복원 사업은 아직 진척되지 못했다. 송 이사장은 “중구 등과 협의해 복원사업을 시작했는데 미래에셋 건물 앞에 한국전력 시설이 지어지고 있어 복원 사업 추진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한전 시설이 완공되면 더 힘을 모아 정부에 복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한 송 이사장은 “기미독립선언서 원본을 비롯해 택리지·연려실기술·구운몽·장화홍련전 등 이곳에서 출간됐던 많은 책을 전시해 그 당시 지식인들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펼쳤는지 알리려 한다”고 강조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기미독립선언서 해외로 어떻게 전파됐나

조종엽 기자 입력 2019-02-20 03:00수정 2019-02-2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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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로 톈진 지역신문에 첫 게재… 美 언론인이 AP통신에 영역본 전달
하와이 신문이 1면 톱기사로 보도
크게1919년 3월 1일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는 즉시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퍼져나가며 조선 독립의 당위성과 의지를 알렸다. 지금까지 5개 언어의 번역본이 발견됐고 그중 영역본만 5종류다. 김도형 연구위원·이덕희 소장·역사공간 제공



“We herewith proclaim….”(영어)

“吾等今玆宣言….”(중국어)  

“Nous, les representants….”(프랑스어)  

“Por la presente proclamamos….”(스페인어) 


조선은 독립국이고, 조선인은 자주민이라고 세계만방에 밝힌 기미독립선언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돼 각국으로 퍼져나가며 독립의 당위성과 의지를 명백하게 전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22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기미독립선언서와 조선광문회’(주최 ‘3·1정신 조선광문회 복원위원회’)에서 독립선언서의 국외 전파 과정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 배포된 독립선언서 최종본이 중국어로 처음 번역돼 실린 건 톈진에서 창간돼 영향력이 컸던 신문 ‘익세보(益世報)’ 1919년 3월 11일자다. ‘짓밟아도 죽지 않는 기자의 혼(최殘不死之箕子魂)’이라는 제목의 기사 가운데 독립선언서 전문(全文)이 실렸다.  


기사에는 번역본을 안중근 의사의 동생이 보냈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김 연구위원은 “실제 번역자는 다른 인물이고, 신문에 쉽게 게재할 목적으로 안중근 동생이라며 보낸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또 적어도 3월 20일경에는 인쇄본 선언서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과 러시아 지역으로 전달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선언서 영역본은 지금까지 5종류가 발견됐다. 전문을 처음으로 보도한 신문은 하와이의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 3월 28일자 1면이다. ‘한국 독립선언서 공개되다(Korean Independence Declaration Bared)’라는 제목의 톱기사와 함께 ‘Manifesto(선언서)’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후 미국 신문들은 거의 이 번역본을 전재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여기 실린 선언서는 캘리포니아 지역신문 ‘새크라멘토 비(Sacramento Bee)’의 발행인이자 ‘원동특별통신원’이었던 매클래치가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1919년 2월 25일 서울에 들어온 매클래치는 3월 4일 서울에서 출발해 일본을 거쳐 호놀룰루에 들렀다. 다시 미국 본토로 와서 독립선언서를 AP통신사에 전했다.

하와이 국민회의 기관지 ‘국민보’ 기사는 매클래치가 독립선언서를 구두 속에 숨겨서 가져왔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인 광산업자이자 AP통신 서울통신원이었던 앨버트 테일러가 직접 또는 동생을 통해 매클래치에게 독립선언서를 전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영역은 테일러의 집사인 ‘김 주사’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덕희 하와이한인이민연구소장은 “하와이 ‘애드버타이저’는 1919년 4월 30일 무오독립선언서 영역본 역시 게재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다음 달 15일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주최로 3·1절 독립운동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이 밖에 3·1운동 당시 한국에 있던 외국인 선교사 등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영역해 해외로 전파했고, 영문학자이며 시인인 변영로(1897∼1961)도 번역했다고 증언했다. 김 연구위원은 “서울 경신학교 교장인 쿤스가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에 보낸 ‘영문 독립선언서’는 번역자가 한국인이라고 나온다”며 “이것이 변영로 번역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독립선언서는 멀리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로도 번역됐다. 기미독립선언서가 발표되고 한 달여가 지난 1919년 4월 15일 멕시코 교민들은 경축식을 열고 독립선언서를 발행했다. ‘신한민보’ 5월 20일자에는 한인들이 번역한 독립선언서를 멕시코 각처의 교회에 보내고 독립 의지를 전파했다고 전했다. 교민 이순녀(Rocardo Lee)가 번역해 당대 3·1절 기념식에서 사용한 번역본이 멕시코 메리다 한인회에 남아 있다. 

프랑스어 번역본은 1919년 9월 파리위원부 통신국에서 발행하는 선전책자인 ‘한국의 독립과 평화(L'indépendance de la Corée et la Paix)’ 부록에 전문이 실렸고, 월간잡지 ‘자유한국(la Corée Libre)’ 제2호(1920. 6)에도 실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불특파위원인 서영해가 1929년 간행한 자전적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eenne)’에도 게재됐다. 러시아어 번역본은 3·1운동 당시 서울의 러시아 총영사관에서 번역해 3월 31일 본국에 보낸 문서에 첨부돼 있다.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다. (L'indépendance de la Corée et la Paix)’ 부록에 전문이 실렸고, 월간잡지 ‘자유한국(la Corée Libre)’ 제2호(1920. 6)에도 실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불특파위원인 서영해가 1929년 간행한 자전적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eenne)’에도 게재됐다. 러시아어 번역본은 3·1운동 당시 서울의 러시아 총영사관에서 번역해 3월 31일 본국에 보낸 문서에 첨부돼 있다.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발견된 독립선언서 번역본은 중국어와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5개 언어지만 앞으로도 더 다양한 외국어본이 발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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