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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집단지성광장' 조선광문회 복원 추진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6-08-23 14:22:09
  • 조회수 261

일제강점기 '집단지성광장' 조선광문회 복원 추진

육당 최남선 고문헌 보존 목적으로 설립…논란에도 "역사적 가치 있어"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일제강점기 국내 지식인들의 집단지성광장이자 고문헌을 보존했던 조선광문회 복원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24일 서울 중구와 조선광문회 복원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중구 청계천 장통교 옆 한빛미디어파크 광문회 터에 광문회 건물을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발기위원회가 꾸려지고 있다.

이 사업을 위해 서울시도 중구청에 광문회 복원을 위한 공원조성 설계변경 용역비 3천만원을 교부하기로 했다.

조선광문회는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육당 최남선이 1910년 고문헌을 보존·반포하고 고문화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한국고전번역원 같은 학술단체(기관)였던 셈이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귀한 고서적과 문화재를 무더기로 반출했다. 최남선은 이에 민족문화를 계승하는 고전을 간행하고 보급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조직 설립에는 백당 현채, 백암 박은식도 참여했다.

최남선은 당시 현 한빛미디어파크 자리에 있던 아버지 소유의 파란색 2층짜리 목조 저택에 둥지를 틀고 젊은 지식인들을 모았다.

장지연과 유근, 이인승, 김교헌 등이 이곳에 모여 밤새 시국을 토론하고 고문헌을 매입해 인쇄·배포했다.

이들은 동국통감,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역사류, 택리지 같은 지리류, 동국세시기 같은 풍토류, 동언해 같은 어운류, 용비어천가와 열하일기 같은 고전, 이충무공전서 등 전집류를 간행하는 데 힘썼다.

180종의 고전 간행을 계획했으나 일제 감시로 20종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외에 주시경, 권덕규, 이규영 등은 국내 최초 국어사전을 편찬하려다 완성하지 못했으며 이후 원고가 조선어학연구회로 넘어갔다.

광문회 건물은 1969년까지는 남아있었지만 이후 도로를 확장하면서 철거됐고 현재는 작은 표지석만 남아 있다.

광문회 복원은 오래전부터 필요성이 언급되고 한때 활발히 추진되는 듯도 했지만 최남선의 친일 활동으로 논란이 우려되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다시 필요성이 제기돼 복원추진위원회가 새롭게 꾸려졌다.

복원추진위 관계자는 "조선광문회는 당대 젊은 지식인들의 집단지성광장으로 르네상스의 산실이자 민족운동을 논하던 곳, 전국의 독립운동 정보가 모이던 곳이었기 때문에 복원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lis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8/24 05:5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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